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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노후 주택단지 붉은 벽돌집, 무채색 도시를 밝히다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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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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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반듯한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찬 반포동 일대 노후 주택 밀집지역에 계단 형태를 띤 붉은 벽돌집이 눈에 띈다. 붉은 요새를 뜻하는 레드 포트리스(Red Fortress)는 ‘오래도록 변치 않는 건물이었으면 한다’는 건축주의 희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233㎡(약 70평) 규모 대지에 올라선 5층짜리 벽돌집은 7년차 건축 아뜰리에 ‘더코너즈(THE CORNERZ) 건축사사무소’를 거쳐 탄생했다. 지난 20일 홍종화·최경철 더코너즈 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을 만나 레드 포트리스에 담긴 가치, 설계 과정 등을 전해 들었다.

 

홍 소장은 “반포동 일대를 보면 강남대로변은 휘황찬란한 상업적 건물들이 많지만, 거대한 도로 사이에 껴 있는 블록들은 무채색에 방치된 듯한 노후 주택들이 가득하다”며 “그곳에 저희가 새로운 활력을 넣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레드 포트리스가 만들어지기 전 해당 부지에는 타일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 소장은 “타일은 탈락이 되거나 훼손될 일이 많다”며 “그래서인지 건축주가 타일보다 오래갈 수 있는 단단한 물성을 갖는 재료를 원했다. 그렇게 붉은 벽돌을 재료로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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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다세대 주택을 비롯한 공동주택을 만들 때에는 정북 방향의 일조권 사선제한(정북일조)이 적용된다. 머릿속에 다세대 주택을 떠올리면 일률적인 주택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오히려 정북일조가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힌트가 됐다고 말한다. 홍 소장은 “반포동 일대 대부분의 건물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사선 형태를 띤다”며 “기형적 도시 형상을 만드는 법적 사항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고민이었다. 저희는 사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반듯한 형상으로 층마다 건물이 밀려 나가는 식이라면 그 앞에 남겨진 공간을 주택 거주자에게 외부 공간으로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근린생활시설인 지하 1층~1층, 주택인 2층~5층 모두 층마다 두 소장의 세심한 고민이 묻어났다. 홍 소장은 “모든 층마다 장점이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하 1층은 보통 어두워서 임대가 잘 안나가고 임대료도 낮은 편인데 개방형 지하(선큰) 구조를 통해 밝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이어 “1층에도 자투리 공간을 정원으로 만들고, 2층~5층은 각 층마다 야외 테라스를 설치했다”며 “각 층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고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설계, 건축 과정을 통해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는 레드 포트리스 준공 이후에도 건축주, 시공사와 매달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다. 그만큼 ‘합’이 좋았다는 뜻이다. 홍 소장은 “건축주, 시공사, 설계사가 한 뜻이 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지금까지 작업한 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레드 포트리스가 삼위일체됐던 작업”이라며 “보통 건물이 지어지는 데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간이 길기 때문에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레드 포트리스는 올해 서초구청으로부터 ‘서초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 소장은 “보통 건축상이라고 하면 규모가 큰 건물, 문화시설 등이 많이 수상하게 된다”며 “레드 포트리스는 다세대 건축이라는 점에서 수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작은 건물은 여지가 없다”며 “서초, 강남 등의 기본적 필지 규모가 231㎡(70평) 내외이고 다세대 주택은 정주 공간이라 규격화된 사이즈가 정해져 있어 건축가의 의도를 갖고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힘들다. 그럼에도 시 요구사항, 건축주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해 하나의 이야기로 끌고 나간 점을 높게 평가해주신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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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가양동 임대아파트 단지 내 관리동을 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킨 ‘여행도서관’도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지하는 기계 전기실, 1층은 경로당과 관리사무소, 2층은 폐업해 방치된 독서실이 있던 관리동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홍 소장은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여러 주체가 참여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여행 도서관은 8개의 날개 형상을 한 타공패널이 건물을 감싸는 형태”라며 “마치 떠다니는 종이배의 돛 같기도 하고,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는 꽃봉우리처럼 만들어 희망과 꿈을 가진 공간으로 변신시키자는 의도를 담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형태적 모호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각자마다 같은 형태를 보고도 다른 걸 상상하게 되는데 건축이 갖고 있는 그러한 묘미를 담은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는 도서관, 학교, 놀이터 등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 공모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최 소장은 “공공 프로젝트를 하면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많은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만들게 되는데 그 안에서 다양한 건축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했다. 홍 소장 또한 “공공 프로젝트는 건축가에게 공공적 성격을 다룰 수 있는 기회, 안정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 경쟁을 통한 자기 발전의 기회를 준다”며 “사무소에 일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 자기 복제를 많이들 하게 된다. 공공 프로젝트는 경쟁을 통해 디자인 역량을 확인하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민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더라도 ‘공공성’을 염두에 둔다는 설명이다. 홍 소장은 “단순히 사무소를 운영하기 위한 설계비를 벌기 위해 건축을 하는 게 아니라 도시와 건축을 위해 건축가들이 해야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본다”며 “저희와 생각이 비슷한 건축주분들과 작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건물로 인해 이 동네 혹은 도시가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과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더 나은 동네,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은 ‘모든 관계를 환대하는 건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코너 즉, 모서리가 만들어지려면 서로 다른 방향의 것들이 모여 만나야 한다. 건축 또한 서로 다른 관계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더코너즈는 관계의 접점에서 어떤 자세로 작업을 해야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을 위한 영감도 그 공간을 사용해야 할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홍 소장은 “건축은 갑자기 건물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곳에 살아야 할 사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며 “저는 항상 사람의 행동, 행위 등 사람 관찰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더불어 최 소장은 “사회 현상도 중요히 여기는 요인 중 하나”라며 “사회가 달라지면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고 건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부분들을 면밀히 보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무소를 이끌어가고 있는 두 소장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축가’, ‘의도가 잘 담긴 공간을 구현하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홍 소장은 “젊은 건축가인 저희가 어떤 건축가로 남고 싶다고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면서도 “건물을 봤을 때 ‘예쁘다’는 반응보다는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알 것 같아’, ‘더코너즈가 작업한 건축물같네’ 이런 반응을 듣고 싶다. 색깔이 분명히 있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 소장은 “레드 포트리스에도 각각의 층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있고 그런 부분이 거주하는 분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며 “그런 측면에서 건축의 의도가 섬세하게 곳곳에 담긴 건물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신혜원 기자 /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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