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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도시발전 상처에 붙인 반창고 ‘얇디얇은집’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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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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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에 아주 조그마한 공터라도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쓰레기 투기 금지’ 팻말이 세워진 모습을 본다. 용처를 못찾은 땅은 이리도 함부로 대해진다.

 

사용가치가 제한된 자투리 땅에 얇은 집을 지어온 신민재 건축가·에이엔엘스튜디오건축사사무소(AnLstudio) 대표는 “작더라도 엄청난 이윤이 안되더라도 그 땅의 사용 목적을 찾고, 사용을 하는 것이 지역과 도시와 사람을 위해 좋다”고 밝혔다. 도시에서 쓰임새를 찾지 못한 채 방치되는 땅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주변으로 슬럼(Slum)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란 생각에서다.

 

 

신 건축가의 자투리 땅에 대한 관심은 2010년 AnL 스튜디오(이하 회사)가 종로 누하동의 몽당주택 건축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회사는 몽당주택의 디자인을 맡았다. 몽당주택은 대지가 34.53㎡(10.44평)인 ‘협소주택’이다. 3층으로 지어서 각 층마다 거실·주방· 침실· 서재 등으로 용도를 배분했다.

 

땅은 좁지만 건축가가 들여야 할 품은 반비례로 커진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프로젝트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다. 몽당주택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회사는 또다른 건축 의뢰를 받았다. 2014년께 의뢰받은 서초구 잠원동의 ‘얇디얇은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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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건축가는 “당시 건축주가 다른 건축사사무소를 돌다가 저희 회사에 와 설계를 부탁했다. 처음엔 저희도 장담을 못 드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땅이 제한적이면 원하는 걸 다 할 수 없다, 즉 포기할 각오가 돼있어야 한다”며 “건축주에게 조건부 가능성을 말씀드리고 진행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난관은 주차 이슈였다. 땅의 면적은 67.7㎡ 정도로 평이했지만 땅의 생김새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도로에 접한 부분이 2.5m가 채 안되고 안쪽으로 깊이는 20m인 바게트처럼 길쭉한 땅이다. 주차장을 설치하면 규모가 훨씬 더 작아지고 거주하는 사람이 생활하기 힘든 형태의 설계가 나올 것이 뻔했다. 신 건축가는 “다행히 지자체에 비용을 내고 주차 설치 의무 대수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며 “만약 주차장을 만들면 2층에 올라갈 계단을 못 만들 뻔했다”고 밝혔다.

 

 

이 땅은 도심주거지역을 통과하는 경부고속도로의 완충녹지에 접해있다. 완충녹지를 조성하며 남은 조각 땅으로 고속도로와 나란하게 조성된 것. 신 건축가는 “강남, 서초, 송파 이런 곳에 자투리 땅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원래 보편적인 계획도시에는 없어야 되는 게 맞다. 그런데 70~80년대에 너무 급하게 공사를 해서 정상적인 순서와 절차였다면 안 생겨났을 땅들이 생겼다”며 “도시의 굵직한 변화에서 나온 흉터, 상처와도 같다”고 말했다.

 

직접 설계한 얇디얇은집처럼 서울 전역에는 이런 협소한 대지 위에 곡예를 타듯 자리한 건축물들이 많다. 그는 “뜨거운 감자처럼, 할 것은 많은, 결론이 쉬이 안 나는 어려운 조건이 많은 걸 저는 ‘뜨거운 건축(아키텍처·Architecture)’이라 부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땅이 문화재는 아니지만, 버티고 살아남았네, 이런 기특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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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얇은 집들은 그 자체로 ‘컴팩트 도시’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개념상의 도시, 어반(Urban)이라면 컴팩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이제 수직으로 발전하는 수밖엔 없다”며 “이런 자투리 땅에 건축하는 것은 일반적인 건축의 1.5배 이상이 드는, 고비용 프로젝트다. 하지만 활용하려는 시도가 곧 컴팩트시티 조성의 연장선 안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얇은 집은 분명 누구나 살기 편한 집은 아니다. 신 건축가는 “아파트는 옷으로 치면 SPA브랜드라 누구나 무난하게, 적당히 불편함 없이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얇은집, 협소주택 이같은 주택은 그 공간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딱 맞으면 편한 것이고, 안 맞으면 한없이 불편한 신데렐라의 맞춤 유리구두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협소주택을 설계할 때의 한 가지 팁을 꼽자면, “방 단위로 나누는 게 아니라 생활하는데 필요한 행위단위로 구분해 공간을 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방, 작은방, 주방 이같은 분류는 불가능하다. 먹기, 그루밍(꾸밈), 수납, 수면 이렇게 구분을 해서 1층은 먹고 수납하는 곳, 2층은 수면, 3층은 그루밍 이렇게 영역을 나눈다”고 말했다.

 

그에게 무엇이 ‘협소주택’인지 묻자, 신 건축가는 “아직 건축계나, 일반적인 대중이나 용어에 있어서 합의가 덜 된 것 같다. 협은 폭이 좁은 걸 말하고, 소는 면적 개념이다. 잠원동 얇디얇은 주택은 전체면적을 다 합치면 4층이라 40평이 넘는다. 지하도 있어서 5개층이다. 과연 이걸 ‘협소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협은 만족시키지만 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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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몽당주택은 좁기도 하고 총 면적도 50㎡ 미만(49.8㎡)이라 협소주택이라고 충분히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저는 두 집을 통칭해서 ‘얇은 집’, ‘틈새주택’ 이렇게 부르고 싶다. 니치(niche)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예를 타듯 건축가가 간신히 지어낸 ‘틈새주택’에는 불편한 꼬리표도 붙는다. 아동과 노년층은 살 수 없는, 즉 라이프사이클이 한정된 집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그는 “집을 지으면 평생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아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100년, 200년 가는 건물은 문화재나 공공성이 큰 건축물이면 된다. 주택은 내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을 계획하면 되지, 이것을 평생 쓸 생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당장 도심에는 살아야겠는데 큰 땅을 소유하진 못한다면 틈새주택이 최적의 맞춤 주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가볍게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민경 기자 /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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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재#에이엔엘스튜디오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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